(여러가지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정말 혐오하는 단어이지만) “헬조선”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되는, 우리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문제점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개인의 “삶의 질”이 말도 못할 정도로 훼손당하고 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삶의 질이 희생되어야만 하는 이유의 중심에는, 정작 개인의 소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물가가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단적으로는 2 년 만에 한국에 들어와 보낸 추석에 경험했던 치솟은 물가는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암울한 것은, 필자가 보기에 그처럼 삶의 질을 희생시킨 채로 그냥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은 앞으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학자나 경영학자가 정의하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물가는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량 사이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수준에서 “스스로” 정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그와 같은 “스스로” 효과적인 동시에 효율적인 수준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동작하지 않는 다는 점에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내수시장의 규모가 매우 제한적인 반면(혹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시장 내에서의 가치사슬이 대부분 기존의 기업들(그것이 대기업이던 아니면 중소규모의 기업이든)에 의해 형성되고 결정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구조가 매우 완고한 상태로 고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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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Contrary Brin>

 

필자가 앞으로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이유는, 그처럼 고착화, 포화된 우리나라의 가치사슬을 점유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장치의 숙명이, 단지 많은 매출을 올리는 것 만에 있지 않고 그를 넘어 지속적으로 매출을 증대시켜야만 한다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

 

이 때, 주지해야 할 것은, 기업이 단지 부를 창출하는 것을 넘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 하는 것이 비판 받아야 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의 성장은 그 기업을 구성하는 임직원들은 물론 주주들, 그리고 기업의 활동으로부터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개선하여 성장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와 같은 성장을 창출해 가느냐에 있을 것이다.

 

 

기업은 물론 계속해서 신사업의 형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거나, 혹은 해외 시장 진출 등 기존에 보유한 시장의 규모를 확대를 통해 성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한적 규모를 가진 국내 시장의 특성은 결과적으로 그 시장 내의 각종 산업의 규모를 제한하고 이는 결국 그들 산업이 쉽게 포화되도록 만든다. 이는 기업이 국내 시장 내에서 신사업 분야에 진출하려 한다 하여도, 그처럼 다각화를 추진할 수 있을 규모의 기업이 진출할만한 규모의 시장이라면 이미 타 기업들에 의해 선점되어 있거나 더욱 심한 경우 이미 포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큼을 의미한다.

 

아울러, 국내 시장의 제한적 규모는, 많은 경우 기업이 기존에 보유한 Capability의 규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이는, 많은 경우에 있어 국내의 기업들이 국내 시장의 제한적인 규모에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규모의 생산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업의 Capability가 시장의 규모에 따라 신속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스케일링(Scaling) 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음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이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내수 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경우, 해당 시장 내에 기 존재하는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매우 힘들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신사업으로의 진출, 혹은 시장의 절대적 규모의 확장이 용이치 않은 경우라면, 기업은 차선으로 주어진 시장 내에서 실적을 개선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와 같은 실적의 개선은 (소폭의 제품 개선을 포함한) 가격의 인상이나 경쟁자의 (M&A를 포함한) 퇴출을 통해 시장 내에서의 점유율을 증대시고 생산 효율화(i.e., 프로세스 혁신)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제한된 시장 안에서의 실적 개선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미 완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시장구조를 선점하고 있는 동시에, 신사업이나 신시장 개척에 대한 여지는 별로 갖지 못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내 기업에게는 오히려 옳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비정상적으로 완고한 국내 시장의 구조 상 이와 같은 실적의 개선을 통한 성장의 모색은, 결과적으로 그 소비자, 즉 우리들의 “삶의 질”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돈의 가치”가 얼마나 하락하고 있는지, 다시 말해 임금과 물가의 증가율 사이의 괴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마나 커져 왔는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현재 우리 정부가 기치로 내걸고 있는 “창조경제”의 수립 초기에 여러 정부 기관에 자문을 제공하였다. 당시 창조경제의 방향성은, 국내 기업들의 성장 여력이 이제 한계에 다다라 그들만의 성장으로는 국가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기업들이 “추격자(Follower)”로서의 전략을 버리고 “시장 선도자(First Mover)”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과 더불어 스타트업을 필두로 한 혁신적 신규기업의 등장 및 시장 진입을 유도하여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에 있었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그와 같은 “창조경제”에 여러 이견이 있어왔던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미국에서 주로 생활하게 된 지금도 다양한 경로로 “창조경제” 하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전략과 시책 및 사업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 운용 상에서 불합리한, 때로는 부조리한 면들이 적지 않음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창조경제”는 옳은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 전반의 방향성을 주도해 나아가야 할 중요한 화두라고 믿고 있다. 기존의 기업들의 전략적 방향성의 전환에 대한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새로운 혁신적 기업들의 맹렬한 등장만이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헬조선”, 즉 삶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상황을 혁파하고, 우리의 미래가 지금까지와는 같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우리 국민의 삶을 실제로 좌우하는 장치들인 기업과 시장의 구조는 이미 완고할 대로 완고해져 있으며, 이는 우리 기업들의 조직구조가 핵심사업을 중심으로 기업집단의 해체에 가까운 집중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업구조의 조정은 결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울러 그와 같은 구조조정이 우리가 필요한, 혹은 원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이루어지는 경우 그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충격을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기존의 기업이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점유하고 있는 곳이 아닌, 그들이 가진 조직의 규모로는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장을 창출하려는 새로운 혁신적 기업을 필요로 한다.

 

 

아마 그것을 “기업가경제(起業家經濟, Entrepreneurial Economy)”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물론 이 때 기업가는, 기존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企業家)이 아닌,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기업을 일으켜내는 사람(起業家)를 의미한다.

 

이들 기업가들이 만들어내야 하는 시장은, 기존 기업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규모의 시작점을 가지고 있는, 그러나 향후 몇 년 안에 엄청난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시장들이다. 그리고 이들 기업가들은, 기존의 기업들이 결코 ‘그래 그건 너의 시장이야’라고 말할 만큼 순진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결코 모방할 수 없는 무기들을, 그것도 매우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처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과, 그 가능성을 실제 시장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리고 엄청난 자금력과 비교할 수 없는 기술력을 가진 기존의 기업들로부터 그와 같은 시장을 지켜내는 것을 하나의 연장선 상에 놓고 보면 그 전체의 가능성은 실로 0에 가까운 확률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지구 위에 살면서 우리 머리 위를 태양이 지나가는 것을 경험하는, 즉 인식하는 것과 크게 상충되는 것이다.

 

“관측의 이론적재성(Theory-ladenness of Observation, 학자에 따라서 ‘관측의 이론의존성’으로 사용하기도 함)”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 얻은 인식이 선입견을 형성하고 그로부터 이론이 형성되며, 이렇게 형성된 이론은 더 나아가 관측에 사용되는 도구까지 지배하게 됨으로써 더욱 더 이론에 부합하는 관측만을 유도하게 됨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류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 즉 현상(Appearance)이 항상 실재(Reality)를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그와 같은 잘못된 인식이 혁파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더욱 고착화되어 갈 수 있다는, 관측의 이론적재성의 한계 및 그로부터 기인하는 위험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앞서 이야기했던 기업가 경제, 즉 기존에 기업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사회의 틀 안에서 자신들만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공략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일들에 실제로 도전하고 이루고 있는 기업가들의 위상이 제고되는 방향으로 사회의 틀을 재편하는 것이, 실제로도 우리가 인식하는 것만큼 어려운, 혹은 불가능한 것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기회가 없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하더라도 기존의 선입견에서 탈피함으로써 얼마든지 기회를 인식하고 또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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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Duck (토끼-오리), 우리의 관점에 따라 토끼로도 오리로도 보인다 (Image Source: flowingdata.com)>

 

특히 (여러 내외부적 이유에 의해) 필요 이상으로 대형화된 기업들을 중심으로 경제가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에 의해 거의 모든 제품들의 가격이 결정되는 우라나라의 경우라면,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Your margin is my opportunity (당신의 마진이 곧 나의 기회이다)”라는 말을 곱씹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나라처럼 인구의 밀집도가 높은(따라서 시장이 지리적으로 밀집되어 있고) 반면 공급자의 수가 제한적인 시장에서는 그만큼 기업가들이 용이하게 시장을 파악하고 혁신을 보급할 수 있을 것임 역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는 기업가정신 위에 세워진 나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戰後)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1960년 대에 우리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던 이들이 바로 기업가(起業家)들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들이 가졌던 기업가정신(起業家精神)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 희미해 진 것은 역설적이고 또 비극적이다.

 

혁명을 뜻하는 영어단어인 레볼루션(Revolution)이 ‘다시 돌아가다는 의미’를 가진 리볼브(Revolve)에 기원한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이제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업가정신으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라는 국가의 위상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그러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 개개인의 삶과 또 삶의 질을 위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업가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인식의 개정(Epistemic Iteration), 즉 혁명적 인식의 개정(Revolutionary Epistemic Iteration)이 필요한 때이다.

 

 

* 본 컬럼은 비석세스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