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고 있다면 “충격에 대비하라(Brace for impact)”는 말은 여러분들이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말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는 여러분들이 탄 비행기가 곧 큰 충돌을 하게 될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행기는 대부분의 기상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또 현대적 비행기들(=우리가 평생에 결쳐 타게 될 거의 모든 비행기들)은 다른 비행기와의 충돌가능성을 미리 파악해 회피할 수 있는 장치를 포함해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위험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장치들을 탑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장치들의 도움에 힘입어 오늘날의 비행기들은 가시거리가 200m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시속 250km가 넘는 속도로 아무런 문제없이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brace for impact

<Image Source: popsci.com>

 

따라서 결과적으로 우리들이 실제로 ‘충격에 대비하라’는 기내방송을 듣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그러니 안심하시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에 대비해야 하는 비상상황이 실제로 발생한다고 있다는 사실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그 피해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2014 년은 우리나라의 벤처 생태계가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한 한 해었다고 평가해도 커다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작년 11 월 말을 기준으로 살펴볼 때 지난 한 해 동안 신설된 국내 벤처기업의 수는 약 3만 여 개에 .이르며, 이들 벤처기업은 전년도 대비 10% 이상 증대된 매출규모를 보여주어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성장률을 압도하였다(관련기사는 여기). 벤처기업의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벤처기업에 필수적인 투자 환경 역시 개선되었으며, 특히 창업 및 초기 성장 단계에 필요한 초기투자(업령 3 년 이내) 집행 건 수가 5 년 연속 증대되는 등 창업 환경에서의 큰 폭의 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관련컬럼은 여기)

 

kvc_portfolio_breakdown_14_1

Figure 1 국내 VC 포트폴리오 업력별 투자건수 비중 추이 (Source: KVCA)

 

그러나 이와 같은 벤처생태계 성장경로 상의 순항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 우리는 동시에 ‘충격에 대비’를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른다.

 

국내 VC 투자의 물꼬를 튼 모태펀드(Korea Venture Fund, 이하 “KVF”)가 형성된 것은 지난 2005 년이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8 년 가량의 라이프사이클(Fund Lifecycle)을 가지는 VC Fund의 특성을 감안해 보면, KVF가 LP로 참여한 1 세대 VC 펀드들은 이제 막 약정이 만기되었거나 이제 만기가 도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점까지 그러한 국내 VC들의 투자회수 현황은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특히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 증대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과 KVF의 성적표와는 상당한 대조를 이룬다.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이 일반적으로 VC의 주된 회수 수단은 기업공개(IPO) 및 매각(M&A)이다. 그러나 국내 VC의 회수 방법 분포를 살펴보면, 2014 년 말을 기준으로 IPO가 전체 회수 중 18%, M&A가 2.1%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80% 가량은 장외매각 및 상환을 비롯한 기타 수단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vc_exit_breakdown_14_1

Figure 2 국내 VC의 회수 방법 분포 (Source: KVCA)

 

아울러, 작년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벤처기업 302 곳과 VC 50 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벤처기업 경영실태와 정책과제’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은 기업의 매각을 통한 Exit 의향을 묻는 질문에서 과반이 채 되지 않는 약 48% 만이 ‘인수제의를 검토해 볼 것’이라는 의견을 내어놓았으며, 나머지 약 52% 가량은 ‘M&A 보다 자체성장을 택할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을 내어놓았다. 게다가 같은 조사에서 국내 VC들 역시 전체의 66%가 선호하는 회수방법이 IPO라 답했으며, 단 20%만이 M&A를 통한 회수를 선호한다는 응답을 내어놓았다.

 

이는 국내의 벤처기업 및 VC가 그야말로 ‘기업을 일구는 것’에 대한 상당한 선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IPO가 M&A에 비해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함과 더불어, 작년 한 해 KOSDAQ에 신규상장된 67 개 종목 가운데 SPAC이나 대기업 계열사를 제외하면 순수 벤처기업은 26 개에 지나지 않았음을 감안해 보면, 이와 같은 ‘기업 일구기’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가 결국 벤처기업의 정상적인 Exit를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미국 NASDAQ에 비미국(非美國)계 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수의 기업을 상장시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창업자들은 우리의 이와 같은 ‘기업 일구기’에 대한 선호에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작년 한 해 Exit을 한 이스라엘계 하이테크 벤처기업의 수는 총 99 개였으며, 그 전체 규모는 69.7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Exit 당 평균 7천만 달러 가량의 규모를 기록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2013 년도의 7,300만 달러에서 오히려 300만 달러 가량 감소한 수치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기업들의 2014 년 성적표가 2013 년의 그것보다 못한 것일까?

 

아래 Figure 3과 4는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스라엘 하이테크 벤처기업의 Exit 규모별 총액과 건 수를 나타내는 Figure 3과 4를 통해, 우리는 2014 년의 Exit이 2013 년의 그것에 비해 규모나 건 수 모두에서 성장하였으며, 다만 건당 규모가 2014 년에 비해 작아졌기 때문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이 과거에 비해 점차 Early Exit을 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Israeli Startup_Exit_breakdown_14_1

Figure 3 이스라엘 하이테크 벤처 Exit 규모별 총액 (Source: IVC)

 

Israeli Startup_Exit_breakdown_14_2

Figure 4 이스라엘 하이테크 벤처 Exit 규모별 건 수 (Source: IVC)

 

필자가 만나본 적지 않은 수의 이스라엘인들은 ‘기업’을 한다는 개념을 잘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하다. 대신 그들은 최대한 빠르게 아이디어를 실행하여 일정 수준까지 성장시키고 이를 매각한 후 또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 자체를 비즈니스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늘날 이스라엘이 ‘Startup Nation’으로 불릴 정도로 벤처강국으로 성장하였고, 또 위 Figure들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들의 그러한 사고방식은 적어도 시장에서는 훌륭히 통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니콘(Unicorn)’이라는 단어가 작년 한 해 벤처계에서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1조 원 규모의 기업가치가 실제로는 M&A를 통한 Exit을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이라는 점과 그 1조 원이 결국 실제로 Exit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종이 상의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사실은 IPO까지 가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필자 역시 창업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업을 일구는 것에 대한 동경과 선호가 비난받을 것이 절대로 아니며, 오히려 권장되고 북돋아져야 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 경험 및 현업으로부터의 경험을 통해 필자는, 대부분의 벤처기업, 특히 하이테크의 벤처기업의 위상이 신사업 모델의 발굴을 수행하는 독립적인 외부의 실험실이 될 때 가장 효과적인 창업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즉,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최대한 빠르고 가볍게 실행하여 매력적인 사업모델로 성장시킨 후 이를 더욱 큰 파급력을 가진 기업에 매각하고 Exit하는 것이 전체 생태계 상에서 벤처기업이 지향해야 할 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 비즈니스가 B2B이건 B2C이건, 궁극적으로는 인수기업을 겨냥한 B2B의 역할을 수행할 때 가장 효과적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필자는 1990 년대 말에서 2000 년대 초반의 버블(Bubble)을 기억할 만큼은 나이를 먹었다. 버블이 무엇인가? 부풀어오를 대로 부풀어오른 풍선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그런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의 우리 벤처 생태계가 Exit이라는 바람구멍 없이, 지금처럼 부풀어 오르기만 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한 번에 터져버리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와 같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창업자 스스로도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위해 반드시 자신의 기업이 가지는 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 위상에 맞추어 창업자 스스로가 기업의 가치와 Exit을 포함한 미래상을 조정해야 한다. 충격에 대한 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